의료폐기물

의료폐기물 처리 기준, 선진국과 후진국의 차이는?

dolcesommar 2025. 7. 11. 23:50

 

 전 세계 병원에서는 매일같이 수많은 의료폐기물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의료폐기물은 의료 행위와 함께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폐기물입니다. 이 중 상당수는 감염 가능성이 높고 인체와 환경 모두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각국은 나름대로의 기준을 통해 이를 분류하고, 수거하고, 처리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나라가 동일한 기준과 인프라, 제도 하에 의료폐기물을 처리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세계 곳곳에서는 의료폐기물 처리에 있어 극심한 불균형과 격차가 존재합니다. 어떤 나라는 고도화된 추적 시스템과 자동화된 소각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반면, 어떤 나라는 의료폐기물을 일반 쓰레기와 함께 매립하거나 불법 소각하는 일도 여전히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선진국과 후진국의 의료폐기물 처리 기준이 어떻게 다른지 구체적인 나라별 사례를 통해 비교 분석하고, 그 격차가 단지 기술적 차이를 넘어서 공공보건, 제도 운영, 환경 윤리, 인식 구조 등 다층적인 요인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을 설명하고자 합니다.

 

선진국과 후진국의 의료폐기물 처리 기준 차이

 

 

의료폐기물 처리 기준이 중요한 이유: 감염병·환경·인권을 모두 아우르는 문제

 의료폐기물은 단순한 병원 쓰레기가 아닙니다. 그 안에는 혈액, 체액, 병원균, 사용된 주사기, 항생제 잔류물, 호르몬, 중금속 등이 포함되어 있을 수 있으며 감염병의 2차 확산, 지역 생태계 파괴, 노동자의 건강 위험, 토양 및 수질 오염 더 나아가 빈곤 지역 아동의 건강권 침해까지 연결되는 복합적인 문제입니다.

 

특히 세계보건기구(WHO)는 다음과 같이 경고합니다:

 

“개발도상국 병원의 60% 이상이 의료폐기물을 적절히 처리할 시설을 갖추지 못했으며 감염성 폐기물의 방치가 지역사회에 심각한 보건 위험을 초래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선진국과 후진국의 의료폐기물 처리 기준 차이는 단순한 행정체계의 미비 문제가 아니라 국가의 보건 안전망 수준, 공공행정의 역량, 사회적 책임에 대한 철학의 차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선진국의 의료폐기물 처리: 기술·제도·윤리의 삼중 시스템

 

 독일

독일은 의료폐기물을 처리하는 데 있어 세계적으로 가장 정교한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각 의료기관은 감염성 폐기물, 예리한 물품, 약물성 폐기물 등을 분류하며 모든 폐기물은 RFID를 기반으로 추적·기록됩니다. 또한 산업보건 규정을 따라 노동자의 보호장비가 의무화되어 있습니다. 특히 소각장은 고온 연소와 다이옥신 저감장치, 유해가스 필터를 갖추고 있어 환경오염 가능성을 최소화합니다. 또한 연방정부는 병원에 대해 연 1회 환경영향평가 보고서를 제출하도록 요구하고 있으며 이 보고서는 공개되어 일반 시민 누구나 열람할 수 있습니다.

 

일본

일본은 의료폐기물 관리에서 ‘위탁처리 책임주의’를 강조합니다. 병원은 의료폐기물을 위탁하더라도 처리 완료 확인서 수령까지 전 과정에 책임을 져야 합니다. 또한 모든 배출 봉투에 처방 정보, 배출 시간, 의료폐기물 종류를 기입하고, 행정구역 단위로 보고 시스템에 등록하게 되어 있습니다. 감염병 발생 시에는 긴급 폐기물 처리 프로토콜이 즉시 가동되며 2020년 코로나19 시기 일본 정부는 병원별 의료폐기물 증가율을 분석하여 탄력적 수거 시스템을 단기간 내에 구축한 바 있습니다.

 

미국

미국은 각 주(State) 단위로 의료폐기물 기준이 상이하긴 하지만 환경보호청(EPA)과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제공하는 가이드라인을 바탕으로 ‘감염관리 중심의 폐기물 분류 체계’를 따릅니다. 병원은 연간 의료폐기물 발생량, 소각량, 재활용 비율 등을 ‘환경 성적표’ 형태로 공개하는 경우가 많고, 일부 병원은 LEED 인증, 녹색 병원 인증을 받기 위해 의료폐기물 감축량을 핵심 경영지표로 설정하고 있습니다.

 

 


후진국의 의료폐기물 처리: 분리, 소각, 규정 없는 위험 구조

 

방글라데시

방글라데시는 의료폐기물 관련 법령이 존재하지만 실제 병원에서의 적용률은 30%도 되지 않는 것으로 조사됩니다. 대다수의 병원은 감염성 폐기물과 일반 쓰레기를 구분하지 않고 함께 배출하며 병원 외곽이나 인근 하천에 불법 투기하거나 노천 소각하는 경우가 여전히 많습니다. 놀랍게도 빈곤층 청소년들이 병원 쓰레기장에서 재사용 가능한 의료기기를 주워서 되팔거나 알약 포장을 재활용하는 ‘의료폐기물 회수 산업’이 성행하고 있습니다. 이는 감염병 확산 위험뿐만 아니라 아동노동, 인권 침해 문제까지 동반합니다.

 

네팔

네팔은 의료폐기물 분류 기준이 존재하긴 하지만 소규모 병원이나 농촌 진료소에서는 기준이 적용되지 않고 있습니다. 다수의 진료소에서는 주사기를 일반 쓰레기봉투에 넣어 야외 매립하거나 식수원 인근에 소각하는 일도 빈번합니다. 또한 의료폐기물 처리 노동자에 대한 보호 장비 지급이나 교육이 전무하여 종종 감염 사고나 피부질환, 호흡기 장애 등의 문제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케냐

케냐의 일부 공공병원은 의료폐기물 소각로가 고장 난 상태로 수년간 방치되어 있으며 수거된 의료폐기물을 도시 외곽에 위치한 일반 쓰레기 매립지에 함께 버리는 구조입니다. 2022년에는 나이로비 인근 매립지에서 사용된 수술 도구와 혈액이 묻은 거즈가 발견되어 지역 주민들이 항의 시위를 벌인 사건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단지 기술의 부재 때문이 아니라 정부의 예산 배분 우선순위, 감시체계 부재, 국제 기준 미준수 등 다층적인 원인에서 비롯됩니다.

 

 

의료폐기물 기준의 격차는 단지 기술 문제가 아니다

선진국과 후진국의 의료폐기물 처리 기준 차이는 단순히 장비나 시설의 유무에서만 비롯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차이는 아래의 4가지 영역에서 드러납니다.

 

법적 의무화 vs 권고 수준

선진국은 의료폐기물 분류, 보관, 운반, 소각, 기록 등의 전 과정을 법령에 따라 의무화하지만 후진국은 대부분 지침 수준의 권고에 그쳐 실효성이 낮습니다.

 

인프라 수준

소각장, 분리보관소, 냉장시설, 운반차량 등 기반 인프라 자체가 없는 국가에서는 어떤 기준이 존재해도 현실 적용이 어렵습니다.

 

노동자의 권익 보호

선진국은 PPE(개인보호장비) 착용, 건강검진, 산업재해 보장 등이 체계화되어 있으나 후진국은 폐기물 처리 노동자에 대한 인권보장 수준이 매우 낮습니다.

 

사회적 감시와 시민 인식

선진국은 병원 폐기물 문제에 대해 언론, NGO, 시민단체의 감시와 참여가 활발하며 정책 개선 요구가 제기되는 반면, 후진국은 언론자유도나 시민의식의 한계로 인해 문제가 드러나지 않거나 방치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결국 의료폐기물의 관리 수준은 국가 전체의 행정력, 시민 참여도, 보건 인식 수준의 집합적 반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의료폐기물은 병원이 존재하는 한 피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하지만 그 폐기물이 처리되는 방식은 나라에 따라 너무나도 다릅니다. 어떤 나라는 봉투 하나하나를 추적하고, 어떤 나라는 그냥 뒤뜰에 불을 붙입니다. 이러한 차이는 단지 기술 유무의 차이가 아니라 제도 설계, 시민의 감시, 병원의 책임, 정부의 의지가 만들어낸 결과입니다. 

 

 국제사회는 의료폐기물의 국제 지침을 마련하고, WHO와 UN은 개발도상국에 대한 기술·인프라 지원 사업을 진행하고 있지만 근본적인 변화는 해당 국가의 의지와 시스템 변화가 동반되어야만 실현됩니다. 한국은 과거 후진국의 의료폐기물 처리 구조를 경험한 바 있지만 지금은 선진적인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경험은 국제협력이나 보건 외교에서 큰 자산이 될 수 있습니다.

 

 의료폐기물은 국가의 거울입니다. 그 나라가 보건을 어떻게 다루고, 인간을 얼마나 존중하며 환경과 미래에 어떤 책임을 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이기도 합니다. 전 세계가 더 안전하고 위생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이 격차를 좁히려는 공동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 시작은 바로 ‘기준의 차이’를 직시하는 데서부터 출발합니다. 나아가 각국은 의료폐기물 관리의 선진 사례를 단순히 기술 이전 차원이 아니라
제도 설계와 운영 철학까지 공유하는 방식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기준은 수치가 아니라 책임이며 시스템은 시설이 아니라 가치의 반영입니다. 의료폐기물이 안전하게 처리되는 사회는 그 자체로 사람을 존중하는 나라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