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폐기물

의료폐기물과 ESG, 병원도 ESG 보고서를 써야 할까?

dolcesommar 2025. 7. 13. 14:02

 

 우리는 병원을 떠올릴 때 치료와 회복, 청결과 전문성을 먼저 떠올립니다. 그러나 동시에 병원이라는 공간은 막대한 자원과 에너지를 소비하고, 의료 행위가 끝난 자리마다 위험성과 환경 부담이 높은 의료폐기물이 끊임없이 발생하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특히 감염성 폐기물, 예리한 물품, 약물 잔류물 등은 특수한 방식으로만 처리되어야 하며 대부분은 고온 소각이라는 방식으로 폐기됩니다. 이 과정은 탄소 배출, 대기오염, 자원낭비 등의 부작용을 동반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병원은 “사람을 살리는 곳”이라는 이유로 그 환경적 영향력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무관심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제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기후 위기, ESG 경영 확산, 글로벌 보건 연대 강화 등으로 인해 의료기관도 환경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시대로 접어들었기 때문입니다. 병원의 선의만으로는 더 이상 환경적 책임을 회피할 수 없고, 측정 가능한 데이터와 계획, 투명한 보고서로 사회적 신뢰를 확보하는 방식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그 중심에는 의료폐기물이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의료폐기물을 중심으로 ESG 경영과 병원의 역할을 조명하고, 병원이 왜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작성해야 하는지, 그리고 그것이 단순한 형식이 아닌 실질적 전환의 시작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의료폐기물과 ESG, 병원의 ESG 보고서 작성 필요성

 

의료폐기물 배출기관 병원의 ESG, 왜 지금 필요한가?

 ESG란 환경(Environment), 사회(Social), 지배 구조(Governance)를 중심으로 조직의 지속가능성을 평가하는 글로벌 경영 기준입니다. 원래는 대기업이나 금융기관 중심으로 논의되던 개념이지만 최근에는 의료기관, 교육기관, 공공기관비영리 섹터까지 확대 적용되고 있습니다.

 

 병원은 단순한 서비스 제공 기관이 아니라 다양한 사회적 자원과 공공 자금을 기반으로 운영되며 그 운영 방식 자체가 사회와 환경에 큰 영향을 미치는 존재입니다. 특히 환경(E) 측면에서 병원은 대량의 에너지 소비, 수많은 일회용품 사용, 고위험 의료폐기물 배출, 온실가스 유발 활동 등으로 의외로 탄소 발자국이 큰 기관에 속합니다. 미국 환경보호청(EPA)에 따르면 병원은 일반 사무실 대비 2~3배 많은 에너지와 폐기물을 소비·배출하며 단위 면적당 탄소 배출량도 가장 높은 건물 유형 중 하나로 분류됩니다.

 

 이런 점에서 병원이 스스로 ESG 기준을 자발적으로 설정하고 그 실행 여부를 투명하게 공시하는 ‘지속가능경영보고서’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사회적 이미지 관리가 아니라 지속 가능한 보건 의료 체계를 위한 ‘시민의 신뢰 자산’ 구축이라는 의미를 지닙니다.

 

 

의료폐기물, ESG의 ‘환경 책임’에 가장 먼저 대응해야 할 항목

 ESG의 E, 즉 환경 항목에서 가장 직관적이고 측정 가능한 부분은 바로 병원이 배출하는 의료폐기물입니다. 의료폐기물은 병원이 일상적으로 생성하는 부산물 중 가장 법적으로 민감하고, 환경적으로 고위험이며 사회적으로 주목받는 대상입니다. 특히 의료폐기물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ESG 관점에서 관리가 필요합니다:

 

- 감염성 폐기물은 소각이 원칙이기 때문에 온실가스와 유해 물질 배출이 필연적으로 발생

- 재활용 불가능한 플라스틱 사용률이 높아 플라스틱 폐기물 문제와 직접 연결됨

- 비용 구조상 폐기물 처리비가 진료비에 전가될 수 있어 공공의료 비용에도 간접적으로 영향

 

 게다가 병원마다 의료폐기물 발생량의 차이는 의료 행위의 효율성, 자원 관리 수준, 내부 감염 예방 체계 등을 평가할 수 있는 지표가 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유럽의 일부 녹색병원(Green Hospital)은 "병상 1개당 폐기물 발생량"을 자체 핵심성과지표(KPI)로 설정해 ESG 보고서에 포함시키고, 매년 감축 목표를 설정하여 공개하고 있습니다. 즉, 병원이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작성한다면 가장 먼저 포함돼야 할 항목 중 하나가 의료폐기물 배출과 감축 전략이라는 것입니다.

 

 

해외 병원들의 ESG 대응 사례 – 의료폐기물은 보고서의 핵심

세계적으로는 이미 많은 선진국 병원들이 ESG 또는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 보고서를 통해 의료폐기물 감축 목표와 성과를 구체적으로 공개하고 있습니다.

 

예시 1. 미국 Kaiser Permanente

미국 최대 비영리 의료기관 중 하나인 Kaiser Permanente는 연간 지속 가능 보고서에서 다음을 공개합니다: 연간 의료폐기물 총 배출량, 감염성 폐기물 비중, 재활용률, 지속 가능한 조달 항목(친환경 일회용품 비율), 폐기물 관련 스코프3 탄소 배출량 수치. 이 보고서는 단순 홍보용 문서가 아니라 ESG 평가 기관과 투자자, 보험사, 지역사회와의 신뢰 형성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예시 2. 싱가포르 Tan Tock Seng Hospital

이 병원은 의료폐기물 자동 분류 시스템을 도입해 소각 대상 폐기물과 재활용 가능 품목을 분리하며 해당 결과를 ESG 보고서에 다음과 같이 수치화해 공개합니다: 폐기물 감축률 (%), 병상당 폐기물 배출량, 분리수거 성공률, 재사용 의료기기 활용 비율

예시 3. 영국 NHS (국가 의료 서비스)

NHS는 2045년까지 탄소중립을 선언하며 소각 기반 의료폐기물 배출을 2030년까지 80% 감축하겠다는 목표를 발표했습니다. 각 산하 병원은 연간 탄소 배출 보고서에 의료폐기물 관련 지표를 포함하고 있으며 중간 점검 결과는 영국 보건부와 공동 공개 플랫폼을 통해 시민과 공유됩니다.

 

이러한 사례들은 ESG 경영이 병원에 있어서 단순 선택이 아니라 미래 생존 전략이자 사회적 신뢰의 핵심이라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한국 병원에서는 왜 아직 ESG 보고서 발행이 드문가?

 그렇다면 국내 의료기관의 현실은 어떨까요? 현재 국내에서 ESG 또는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자체적으로 발행하는 병원은 극히 드문 실정입니다. 서울대병원, 국립암센터 등 일부 공공기관은 CSR 형태의 간략한 환경 보고를 시행 중이지만 민간 병원이나 중소규모 병원에서는 제도적 강제나 지원 체계가 없어 거의 시도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의 원인은 크게 3가지로 분석됩니다:

 

ESG에 대한 인식 부족

병원 경영진은 ESG를 기업의 경영 전략으로만 오해하고, “비영리 기관은 해당 사항이 없다”라는 인식이 여전히 존재합니다.

 

측정과 평가의 어려움

의료폐기물은 종류가 복잡하고, 배출량 추적 시스템(RFID 등)이 있더라도 실시간 데이터를 ESG 보고서에 연결하는 구조가 부재합니다.

 

정책적 유인 부족

정부 차원의 ESG 연계 평가나 공공 병원 성과 평가 지표에 의료폐기물 관련 항목이 아직 명시적으로 반영되어 있지 않다는 점도 문제입니다.

 

 결국 한국의 의료기관들이 ESG 보고서를 적극적으로 작성하지 않는 것은 단지 의지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제도적 기반과 기술적 인프라, 사회적 요구가 부족한 구조적 문제라고 볼 수 있습니다.

 

 

 

 병원은 단순히 사람의 질병을 치료하는 공간을 넘어 지역사회와 환경, 미래 세대에 대한 책임까지 포함한 윤리적 주체가 되어야 합니다. 이제는 의료기관의 운영이 환자의 생명을 살리는 동시에 지구의 건강에도 기여할 수 있어야 하는 시대입니다.

 

ESG 경영은 단순한 트렌드가 아닙니다. 병원 스스로가 자신이 배출하는 의료폐기물, 사용하는 에너지, 남기는 탄소발자국에 대한 성찰과 조치를 통해 신뢰받는 기관으로 변화하는 기회입니다. 특히 의료폐기물은 그 실체가 명확하고, 감축 효과도 단기적으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병원이 ESG 경영을 시작하는 첫 관문으로 가장 적합한 주제입니다. 앞으로는 단순한 보고서 작성에서 그치지 않고 의료폐기물 발생량을 줄이기 위한 프로세스 개선, 친환경 의료자재 전환, 직원 교육과 시민 참여 프로그램 등 입체적인 실행 전략이 병원의 경쟁력이 될 것입니다.

 

 정부와 지자체도 병원의 ESG 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공공 병원에서부터 점진적으로 ESG 보고서 의무화나 인센티브 제도를 도입한다면 한국 의료계 전체의 지속가능성이 한 단계 도약할 수 있을 것입니다.

 

 병원의 윤리는 진료실 안에서 시작되지만 그 완성은 의료폐기물 처리실과 에너지센터, 지속가능경영보고서 마지막 장에서 결정됩니다. 의료폐기물을 줄이는 것은 단순히 청소나 예산 절감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지속 가능한 의료를 향한 첫걸음이자 병원이 사람과 지구 모두를 살리는 진정한 치유의 공간이 되기 위한 필수 조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