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폐기물

국내 의료폐기물 처리 역사의 변천사

dolcesommar 2025. 7. 11. 19:38

 

 현대 의료는 끊임없이 발전하고 있으며 의료 행위가 늘어날수록 필연적으로 의료폐기물의 양도 증가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병원’ 하면 떠올리는 이미지는 대부분 청결하고 멸균된 공간이지 그곳에서 나오는 엄청난 양의 폐기물은 좀처럼 상상하지 못합니다. 의료폐기물은 일반 쓰레기와 달리 감염성, 독성, 예리한 물품 등 복합적인 위험요소를 포함하고 있어 처리 기준이 매우 까다롭고 사회적인 관심도 점점 높아지고 있는 분야입니다.


 특히 국내에서는 1990년대 중반까지 의료폐기물에 대한 명확한 분류 기준이나 처리 시스템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실상 오랫동안 의료기관 내부에서 ‘불투명한 처리 관행’이 이어져 왔습니다. 그러나 감염병 확산, 환경오염 사례, 국제 기준 강화 등의 영향을 받아 국내에서도 제도와 인식이 빠르게 변화해 왔습니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의료폐기물 전용 수거 시스템’, ‘소각장 연계 처리’, ‘RFID 추적’ 같은 체계적인 방식은 사실 매우 최근에 정착된 제도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국내 의료폐기물 관리의 역사를 제도 도입 이전의 초기 단계부터 제도화, 첨단화되며 환경 중심의 현재 시점에 이르기까지 연대기별로 정리하여 독자가 이 변화의 흐름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국내 의료폐기물 처리 역사의 변천사

 

 

1980년대 이전: 의료폐기물은 ‘그냥 쓰레기’였다

 1980년대 이전 한국 사회에서 의료폐기물이라는 개념은 법률이나 제도적으로는 물론 사회 인식 측면에서도 거의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대다수 병원에서는 의료 행위 후 발생한 폐기물을 일반 생활 쓰레기나 사업장 쓰레기와 함께 배출했습니다. 그 결과 주사기, 혈액 묻은 거즈, 실험용 동물 사체, 수술 기구 등도 분리되지 않은 채 도시 쓰레기와 함께 매립되거나 종종 의료기관 주변의 공터, 하천 등에 불법 투기되곤 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위생적·환경적으로 매우 위험한 구조였으며 도시화와 산업화가 급속도로 진행되던 시기에도 의료폐기물에 대한 관리는 여전히 사각지대에 있었습니다.


 정부 차원에서도 병원 쓰레기를 ‘기타 일반폐기물’로만 간주하던 시기였고 의료인들조차 의료폐기물의 사회적 파장을 의식하기보다는 병원 내부 청결 유지에만 집중하던 시대였습니다. 즉, 의료폐기물이라는 단어조차 존재하지 않았던 이 시기에는 위험 폐기물 관리의 개념이 자리 잡지 못했고 감염병의 2차 확산 가능성조차 사회적 문제로 인식되지 못했던 과도기였습니다.

 

 

1990년대: 제도의 출발, ‘의료폐기물’이라는 개념의 탄생

 1990년대는 국내 의료폐기물 관리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시기입니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의료폐기물’이라는 명확한 용어가 법령에 도입되었고, 본격적인 규제와 분류 기준이 마련되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핵심적인 변화는 1992년에 개정된 「폐기물관리법」이었습니다. 이 개정안에서 처음으로 ‘특정 폐기물’이라는 개념을 도입하며 의료폐기물을 감염성과 연관된 독립 범주로 분리하였습니다. 그에 따라 1993년 환경부는 ‘감염성 폐기물 관리지침’을 행정지도로 배포하였으며  병원들이 자체적으로 감염성 폐기물을 분리·수집·보관하도록 권고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전국 병원의 인프라나 인식 수준은 이를 따라가지 못했습니다. 쓰레기통을 여러 개로 나눠서 사용하는 수준이었고 별도의 전용 봉투나 저장 용기, 냉장 보관 기준은 없었습니다. 수거 역시 일반 생활 폐기물 업체가 담당했고 의료폐기물만을 전문적으로 처리하는 업체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1995년과 1996년을 전후로 B형 간염 전파, 수술 후 감염 등 병원 내 위생 사고가 사회 문제화되면서 정부는 더 강력한 규제를 도입하게 되었고, 의료폐기물 전용 처리 시스템의 필요성이 본격적으로 대두되었습니다. 이 시기는 ‘의료폐기물’을 공공위생 차원에서 독립 관리해야 한다는 인식이 형성되기 시작한 시기로 평가됩니다.

 

 

2000년대: 의료폐기물 전담 처리 체계 도입과 민간 업체 확산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의료폐기물 관리는 민간 처리 업체 중심의 전담 처리 체계로 빠르게 전환됩니다. 이때부터는 의료기관이 자체적으로 의료폐기물을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의료기관과 ‘의료폐기물 처리 위탁 계약’을 체결한 전문 업체가 전용 봉투 수거, 운반, 소각까지 전담하게 됩니다. 이 시기의 주요 변화는 다음과 같습니다.

 

2000년 폐기물관리법 전면 개정

의료폐기물의 정의와 분류 기준을 보다 구체화하고 보관 기간, 보관 장소의 위생 조건, 운반 기록 등을 의무화

 

2003년 이후

의료폐기물 수집·운반·처리 업체에 대해 환경부 등록제 도입. 일정 기준 이상의 시설, 장비, 전문인력을 갖추지 않으면 허가 불가.

 

소각 중심 처리 방식 정착

감염 우려로 인해 대부분의 의료폐기물은 전국의 지정된 소각장에서 고온 소각으로 처리되기 시작. 이를 통해 위생적이고 안전한 폐기물 제거가 가능해졌으며 민간 소각업체와의 계약 구조가 확립됨. 

 

감시체계 도입

운반 기록을 수기로 작성하던 방식에서 차량 GPS, 일지 자동화로 일부 전환. 환경부 및 지자체의 비정기 현장 점검 실시.

 

 이 시기는 병원 내부에서 의료폐기물 처리 문제가 병원 외부의 민간처리 인프라와 연계되며 체계적으로 분리되기 시작한 시기로 의료폐기물이 본격적인 산업으로 자리 잡은 시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2010년대: RFID 의료폐기물 추적 시스템 도입

 

2010년대는 의료폐기물 관리의 디지털화가 시작된 시기입니다. 가장 큰 변화는 2011년부터 단계적으로 도입된 ‘RFID 의료폐기물 추적관리 시스템’입니다.

 

RFID 시스템의 주요 특징

- 각 의료폐기물 봉투마다 개별 태그 부착

- 의료기관, 운반업체, 소각업체 모두 공통 플랫폼을 통해 의료폐기물 이동 경로 기록

- 의료폐기물 배출 시간, 수거 차량, 운반 거리, 소각 시간까지 실시간 데이터 수집 및 공유

- 환경부 전산망과 연계, 불법 유기나 미보고 건 자동 감지 가능

 

 이 시스템은 의료폐기물의 위치, 이동, 처리 현황을 정부가 실시간으로 추적할 수 있게 해주었고, 무단 투기, 방치, 미처리 등 다양한 문제를 현저히 줄이는 효과를 낳았습니다. 또한 이 시기에는 ‘감염병 관리 체계’와 '의료폐기물 처리'를 연계하는 시도도 등장했습니다. 예를 들어 메르스(2015), 구제역 등 대규모 감염병 발생 시 감염 환자나 관련 의료물품에서 발생한 폐기물은 긴급 폐기물 처리 절차에 따라 신속히 격리·소각되도록 매뉴얼화되었습니다. 이 시기는 ‘위험한 폐기물’에서 통제 가능한 자원 흐름’으로 의료폐기물의 인식이 전환된 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2020년대 이후: 팬데믹, 친환경, 그리고 병원 ESG의 과제

 2020년대 들어서면서 의료폐기물 문제는 단순한 처리 효율이나 위생 차원을 넘어 환경정책, 기후 위기, ESG 경영과 연결되기 시작했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은 국내 의료폐기물 처리 시스템에 사상 최대의 부담을 가했습니다. 2020년 한 해에만 코로나 관련 의료폐기물이 년 대비 2.4배 이상 급증했고 진단키트, 보호복, 마스크, 페이스 쉴드 등의 사용이 폭증하면서 소각장 포화 문제와 수거 지연 사태가 반복되었습니다. 이후 정부는 다음과 같은 대책을 도입합니다:

 

- 임시 보관 기준 완화 및 긴급 수거 차량 배치

- 감염병 관련 폐기물 별도 분류와 보고 체계 강화

- 비상시 의료폐기물 전용 소각장 확충 계획 수립

 

 또한 최근에는 병원의 ESG 경영 요소 중 하나로 ‘폐기물 감축’이 적극적으로 논의되고 있으며 일부 선진 병원은 생분해성 의료용품 사용, 재사용 가능한 기구 도입, 스마트 폐기물 관리 솔루션을 도입하고 있습니다. 즉, 의료폐기물은 이제 단순히 제거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병원의 책임과 지속가능성을 상징하는 지표로 진화하고 있는 중입니다.

 

 

 

 국내 의료폐기물 처리 역사는 단순한 기술 발전의 흐름이라기보다는 의료와 사회가 의료폐기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어떻게 인식하고 대응해왔는지를 보여주는 거울입니다. 처음에는 병원에서 배출된 쓰레기를 그냥 묻거나 버리던 시기에서 법과 제도가 도입되고, 처리 업체가 생기고, 감시체계가 마련되었습니다. 결국 오늘날에는 데이터 기반, 환경 중심의 감시와 관리 체계로 진화해 왔습니다. 이 과정은 단지 의료기관의 변화만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공공위생, 환경정책, 정보공개, 책임 경영 등 다양한 관점에서 의료폐기물을 바라보는 시선이 깊어졌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앞으로의 의료폐기물 관리 역시 단순히 기술로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법, 제도, 병원의 책임, 시민 감시, 환경 윤리 등 다양한 요소가 함께 진화해야만 가능한 일입니다. 폐기물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다루고 처리하는지에 따라 의료의 윤리와 미래가 결정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