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폐기물

해외에서는 의료폐기물을 어떻게 처리할까? 주요 국가 시스템 비교 분석

dolcesommar 2025. 7. 7. 23:09

 

 의료폐기물은 단순한 병원 쓰레기가 아닙니다. 수술 후 남은 조직, 주사기, 혈액 묻은 거즈, 폐의약품 등 감염 가능성과 인체 유해성이 높은 고위험성 폐기물로 분류되며 이를 안전하게 처리하지 않으면 지역사회에 직접적인 피해를 줄 수 있습니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전 세계적으로 의료폐기물의 양이 폭증하면서 각국은 이 문제를 공공보건과 환경 관리의 핵심 이슈로 다루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나라는 의료폐기물 처리에 있어 엄격한 고온 소각 중심 체계를 운영하고 있으며, RFID 시스템을 통해 추적 관리 체계를 전면 도입한 바 있습니다. 그렇다면 해외는 어떨까요? 의료 체계가 다르고 인프라 수준, 법제, 환경 기준도 서로 다른 국가들은 의료폐기물 처리에 어떤 방식을 택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시사점은 무엇일까요?

 

 이번 글에서는 미국, 독일, 일본, 스웨덴, 싱가포르 등 주요 5개국의 의료폐기물 처리 시스템을 비교 분석하고, 그 안에서 공통점과 차이점, 그리고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이를 통해 국내 의료폐기물 정책의 발전 방향을 조망하고, 국제적 기준에 부합하는 처리 기술과 규제 체계를 고민해 보는 기회를 마련하고자 합니다.

 

해외 주요 국가의 의료폐기물 처리 시스템 비교 분석

미국 – 민간 중심의 규제와 기술의 공존

 미국은 의료폐기물 처리를 민간 중심으로 운영하는 대표적인 국가입니다. 연방정부 차원의 기본 법령은 “의료폐기물 추적법(Medical Waste Tracking Act of 1988)”에 기반하고 있으며 각 주(State) 단위로 보다 구체적인 규제와 지침을 마련해 자율성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비소각 처리 기술의 도입과 상용화가 매우 활발하다는 것이 특징입니다. 특히 다음과 같은 방식들이 널리 사용됩니다:

 

- 멸균 + 분쇄 방식 (Autoclave + Shredding): 고압 증기로 멸균한 후 기계적으로 분쇄해 매립 또는 재자원화

- 화학 처리(Chemical Disinfection): 소량 폐기물에 대해 화학약품으로 병원균 사멸

- 전자빔, 마이크로웨이브 처리: 감염성은 낮지만 전염 가능성이 있는 폐기물에 대해 적용

 

 이러한 방식은 고온 소각에 비해 탄소 배출이 적고, 인근 주민의 반발도 덜하며 소규모 병원에서도 자체 처리가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단점은 병원균 사멸의 완전성 확보를 위한 정기적 검사와 장비 유지 보수 비용이 높은 편이라는 점입니다.

 

 또한 미국은 의료폐기물 처리 분야에서도 환경부(EPA), 질병통제센터(CDC), 노동부(OSHA) 등 여러 기관이 다층적으로 규제·감독하는 체계를 유지합니다. 이를 통해 감염 예방, 산업 안전, 환경보호의 관점을 종합적으로 반영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탄소 배출량 감축 목표에 따라 소각시설의 신규 허가가 사실상 중단되고 있습니다.

 

 

독일 – 자원순환과 분리배출의 극대화

 독일은 유럽 내에서도 자원순환 및 폐기물 감축 정책이 가장 앞선 국가 중 하나입니다. 의료폐기물 분야에서도 소각보다는 ‘분리와 분류’를 통한 일반폐기물 전환 및 자원화에 매우 높은 비중을 두고 있습니다.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의료폐기물의 세분화된 분류 체계입니다. 예를 들어 독일의 분류는 다음과 같이 나뉩니다:

 

- 그룹 A: 일반 생활폐기물 수준 (재활용 가능)

- 그룹 B: 감염 위험 없는 의료 잔재물 (일반 소각)

- 그룹 C: 감염 가능성이 있는 폐기물 (전용 멸균 또는 고온 소각)

- 그룹 D: 독성, 방사능 포함된 특수 폐기물 (국가 승인 시설로 운반)

 

 이러한 분류를 통해 감염 위험이 없는 대부분의 폐기물을 의료폐기물이 아닌 일반폐기물로 전환시킵니다. 또한, 플라스틱이나 금속류 기구는 별도로 재활용 채널을 통해 소각 없이 회수할 수 있도록 시스템화되어 있습니다. 독일은 의료시설 내부에서부터 ‘분리 의식’을 매우 강하게 강조합니다. 간호사와 의료진에게는 폐기물 분리배출 교육이 필수로 진행되며 배출 오류 발생 시 벌금 또는 재교육이 부과됩니다. 이처럼 처리 단계 이전의 배출 단계에서부터 시스템을 고도화함으로써 전체 폐기물 처리량을 줄이고 환경 영향을 최소화하는 데 성공하고 있습니다.

 

 

일본 – 고밀도 도시환경에 맞춘 ‘밀착형’ 처리 시스템

 일본은 고밀도의 도시환경과 제한된 토지 자원을 가진 국가로 의료폐기물 처리에서도 공간과 효율성이라는 현실적인 문제를 고려한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일본은 감염성 폐기물에 대해 "의료폐기물 특별 관리 제도"를 운영하며 이 제도에 따라 각 의료기관은 지정된 분리, 보관, 수거 절차를 의무적으로 따라야 합니다.

 

 특징적인 점은 도심 밀착형 소형 소각시설의 활용입니다. 일부 병원은 자체 소각로를 보유하고 있으며 지역 지자체 단위로도 소형 모듈형 소각장 또는 멸균 장비를 구축하여 의료폐기물이 장거리 이동 없이 바로 처리되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이 방식은 운송 중 감염 우려와 탄소 배출을 줄이는 데 기여합니다.

 

 또한 일본은 의료폐기물 수거를 민간 업체에 위탁하되 각 업체는 도시환경 기준에 맞춰 냄새, 소음, 차량 동선 등까지 규제를 받습니다. 이로 인해 운반 차량의 냉장 보관 기준, RFID 추적 시스템, 외부 노출 방지 포장재 사용 등 세부 기준이 매우 정교하게 설정되어 있습니다.

 

 탄소중립 목표와 관련해서는 일본도 소각 최소화를 목표로 전자선 멸균, 마이크로파 분해, 자외선 멸균 기술 개발에 국가 연구비를 집중 투입하고 있으며 2050년까지 감염성 폐기물의 소각 비중을 50% 이하로 낮추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스웨덴 – 에너지 회수와 지역 순환 경제 중심

 스웨덴은 의료폐기물 처리에서 에너지 회수와 지역사회 순환 경제 모델을 가장 적극적으로 적용하는 국가 중 하나입니다. 의료폐기물은 대부분 고온 소각되지만 소각 열은 전량 지역난방 네트워크로 공급되어 에너지 손실이 거의 없습니다.

 

 스웨덴의 소각장은 대부분 열병합발전소와 연결되어 있으며 병원이나 보건소에서 발생한 의료폐기물은 지역 내에서 자체 소각, 자체 에너지화되어 다시 사회에 환원되는 구조입니다. 예를 들어 한 도시의 종합병원에서 발생한 의료폐기물이 인근 소각장에서 처리되어 지역 유치원과 노인복지센터의 겨울철 난방에 사용되는 방식입니다.

 

 또한 스웨덴은 재사용 가능한 멸균 기구의 활용 비율이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일회용 주사기, 의료 장갑, 수술복 등의 사용을 줄이기 위해 고품질 재사용 가능한 제품을 개발하고 이를 중앙 멸균 센터에서 처리한 후 각 병원에 재공급하는 시스템을 국가 차원에서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는 '의료폐기물 발생량 감소''에너지 회수 효율 향상'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는 정책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싱가포르 – 디지털 기반의 의료폐기물 통합 관리

 싱가포르는 작은 국토와 고밀도 인구 구조를 가진 도시국가로 폐기물 정책에서도 통합 관리와 디지털 기반 행정이 두드러지는 특징입니다. 의료폐기물 역시 국가 주도의 통합 관리 시스템을 통해 처리되고 있으며 실시간 모니터링, 수거 최적화, 자동 보고 시스템이 체계적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특히 싱가포르는 “NEA e-Tracking System”이라는 폐기물 통합 정보시스템을 운영하며 모든 배출·수거·소각 이력을 QR코드 또는 RFID 태그를 통해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위반 발생 시 즉각 경고가 가능하며 폐기물 처리 현황은 국민에게도 공개되어 투명한 폐기물 관리 문화가 조성되어 있습니다.

 

 또한 의료폐기물 소각장의 폐열은 인근 산업 단지 및 정수장에 공급되어 에너지 효율을 극대화하고 있으며 탄소 배출 감축량은 기업의 ESG 보고서에도 활용됩니다.

 

 싱가포르는 기술 개발 측면에서도 AI 기반 폐기물 발생 예측 시스템, 온도·습도 자동 감지 멸균 기기, 클라우드 기반 중앙 감시 시스템 등 미래형 의료폐기물 관리 모델을 실현하는 선도국가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의료폐기물은 전 세계 모든 국가에서 발생하지만 그 처리 방식과 철학, 제도, 기술 수준은 국가마다 확연히 다릅니다. 그러나 공통적으로 확인되는 방향성이 있습니다. 바로 “소각 의존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 “자원순환과 지역사회 수용성을 고려한 체계 구축”, 그리고 “탄소중립을 향한 기술 혁신”입니다.

 

 한국은 고온 소각 중심의 체계를 비교적 잘 구축하고 있으며 RFID 기반 추적 시스템과 같은 선진 디지털 기술도 보유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소각 이외의 대체 기술 확대, 자원 회수 비율 제고, 소형 시설의 지역 분산 처리 모델 구축, 재사용 가능한 의료물품 확대 등은 아직 갈 길이 멀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해외 주요 국가들의 사례는 한국이 의료폐기물 정책을 보건 위생 중심에서 환경 지속 가능성 중심으로 전환해 나가는 데 매우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합니다. 앞으로 우리는 해외 각국이 이미 시도하고 있는 다양한 실험 속에서 “무엇이 가장 안전하고, 친환경적이며, 지속 가능한 방식인가?”를 더 고민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