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폐기물

의료폐기물과 미세플라스틱, 과연 무관할까?

dolcesommar 2025. 7. 10. 10:37

 

 병원이라는 공간은 생명을 치료하고 보호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곳이지만 그만큼 많은 양의 폐기물을 배출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특히 감염 예방을 위해 사용하는 1회용 제품들은 의료의 안전성과 위생을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자원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1회용 의료기기와 보호장비, 포장재 대부분은 플라스틱 기반의 재질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주사기, 수액백, 멸균 장갑, 마스크, 방호복 등은 일회용이기 때문에 사용 후 바로 버려지며 그 수는 매일 수천만 개에 달합니다.

 

 문제는 이 많은 의료용 플라스틱 폐기물이 단순히 버려지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데 있습니다. 의료폐기물은 대부분 고온 소각을 원칙으로 하지만 일부는 부적절하게 매립되거나 불법 폐기되는 사례도 존재합니다. 소각 과정에서 발생하는 잔재물과 비소각 폐기물은 미세한 형태로 자연환경에 잔존하게 되며 시간이 지나면서 미세플라스틱이라는 새로운 위협으로 변질됩니다. 미세플라스틱은 5mm 이하 크기의 플라스틱 입자를 말하며 지금까지는 주로 빨대, 비닐, 플라스틱 컵 등 일반 소비재에서 발생한다고 알려져 있었지만 최근에는 의료폐기물도 중요한 공급원 중 하나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의료폐기물에서 발생하는 플라스틱은 어떻게 미세플라스틱이 되는 것일까요? 그리고 그것은 인체와 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치며  우리는 어떤 대응을 할 수 있을까요? 이 글에서는 의료폐기물 속 플라스틱의 특성과 분류, 미세플라스틱화 되는 경로, 생태계와 건강에 미치는 영향, 그리고 국내외 기술 및 정책 동향을 종합적으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의료폐기물에서 유래한 미세플라스틱이 환경과 건강에 미치는 영향

 

 

의료폐기물 속 플라스틱 – 병원에서 매일 버려지는 것들

의료폐기물 중에서 플라스틱 기반의 품목은 전체의 절반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높습니다. 병원에서는 감염을 막기 위해 많은 도구를 1회용으로 사용하며 이는 대체로 합성수지로 제작되어 있습니다. 대표적인 의료용 플라스틱 품목은 다음과 같습니다:

 

- 주사기 및 주사기 바늘 캡

- 수액백 및 수액 세트(튜브 포함)

- 1회용 멸균 장갑, 고글, 마스크, 가운

- 수술용 포장지(PE, PET 필름 등)

- 의약품 포장재(플라스틱 바이알, 블리스터 팩)

- 검사용 키트(코로나19 진단키트 포함)

- 기저귀류, 플라스틱 위생 패드 등 위생 보조 기기

 

 이러한 플라스틱 제품들은 대부분 복합소재로 구성되어 있으며 고온에서도 형태를 유지하거나 멸균 처리를 견디도록 설계되어 있어 일반적인 플라스틱보다 훨씬 오래 환경에 남을 수 있습니다. 또한 의료용 플라스틱은 약물이나 체액과의 접촉이 있었던 경우가 많아 ‘오염된 폐기물’로 분류되어 소각 외의 처리 방식이 제한됩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모든 의료용 플라스틱이 소각만으로 처리되는 것은 아닙니다. 수거가 지연되거나 소각 시설이 포화되었을 때 일부는 임시 매립되거나 방치되는 경우도 있으며 이 과정에서 환경에 유출될 가능성이 존재합니다. 또한 포장지나 비접촉성 재질 등은 의료폐기물이 아닌 일반폐기물로 간주되어 별도의 관리 없이 폐기되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미세플라스틱 오염원이 될 가능성이 더욱 큽니다.

 

 

의료폐기물에서 발생하는 폐플라스틱은 어떻게 미세플라스틱으로 변하는가?

플라스틱은 자연에서 잘 분해되지 않는 물질입니다. 특히 의료용 플라스틱은 강한 내열성과 내화학성을 지니고 있어 환경 중에 노출되었을 때도 수십 년 이상 형태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풍화, 자외선, 기계적 마찰, 열화 등의 과정을 거치면서 서서히 쪼개지고 부서지며 결국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플라스틱으로 변질됩니다. 의료폐기물이 미세플라스틱으로 전환되는 경로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소각 후 잔재물에서의 생성

고온 소각 후에도 일부 미세 잔재물은 남게 되며 이 중 일부는 공기 중 비산 되거나 폐기장 주변 토양에 침착되어 미세입자가 됩니다.

 

불법 방치 및 매립

규정 외 장소에 의료폐기물이 부적절하게 매립되거나 장기 보관될 경우 외부 환경에 노출된 플라스틱이 서서히 분해되어 미세플라스틱이 발생합니다.

 

하수 및 폐수 유입

병원 내 소규모 플라스틱 폐기물이 청소 과정이나 손세정 폐수와 함께 하수도로 흘러들어가 정수되지 않고 하천이나 해양으로 유입될 수 있습니다.

 

분리배출 오류로 인한 일반 쓰레기 유입

포장지나 비의료성 플라스틱이 일반 쓰레기로 처리되면서 재활용되지 않고 일반 매립지에 묻히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런 경우 장기적인 풍화 과정을 거쳐 환경 중에 미세플라스틱이 생성됩니다. 특히 주사기 바늘 캡, 수액관 튜브, 포장 필름 등은 길고 얇은 형태를 갖고 있어 미세 섬유형 플라스틱으로 변형되기 쉬우며 토양과 수계에 그대로 침투하게 됩니다. 이러한 의료 폐플라스틱은 기존 생활폐기물보다 더 빠르고 깊숙이 생태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의료폐기물에서 유래한 미세플라스틱이 환경과 건강에 미치는 영향

 미세플라스틱은 지금까지 해양 오염의 주범으로 알려져 왔지만 최근에는 토양, 대기, 담수 등 모든 환경 매체에서 검출되고 있습니다. 의료폐기물에서 유래한 미세플라스틱은 보다 복합적인 위험을 동반할 수 있습니다.

 

 첫째, 물리적 위험성입니다. 미세플라스틱 입자는 동물의 소화기관을 막거나 조직 내에 축적되어 세포 손상과 염증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플랑크톤, 조개, 어류, 조류 등 다양한 생물이 미세플라스틱을 섭취하는 사례가 전 세계적으로 보고되고 있으며 결국 인간의 식탁으로 되돌아오는 생물 농축의 위험도 동반합니다.

 

 둘째, 화학적 위험성입니다. 의료 플라스틱에는 멸균을 위한 첨가제, 가소제, 내열 처리 화학물질 등이 다량 포함되어 있으며 이들이 환경 중에 퍼질 경우 환경호르몬, 발암물질 등의 유출 우려가 큽니다. 또한 약품이 묻은 플라스틱은 항생제 내성 유전자(AMR) 확산을 촉진할 수도 있습니다.

 

 셋째, 인체 흡입 및 섭취 위험성입니다. 미세플라스틱은 공기 중에도 존재할 수 있으며 호흡기 또는 피부를 통해 흡입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일부 연구에서는 혈액, 폐, 모유, 장기 내에서 미세플라스틱이 검출되었다는 사례도 보고되고 있습니다. 특히 병원 주변이나 소각시설 근처에서의 미세플라스틱 농도는 일반 지역보다 높을 가능성이 있으며 의료 폐기물의 배출과 분해 과정이 새로운 건강 리스크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해야 합니다.

 

 

의료폐기물 내 플라스틱은 왜 더 위험할까?

 의료용 플라스틱은 단순한 포장재 이상의 의미를 가집니다. 일반적인 생활 플라스틱과는 다른 의료 목적에 맞춘 특수한 기능성 화학물질이 포함되어 있으며 그만큼 환경에 미치는 영향도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고분자 재질

열과 압력을 견디기 위해 고분자 합성수지를 사용하며 일반 플라스틱보다 더 분해가 어렵고 미세화 시에도 오래 잔존합니다.

 

첨가제 함량이 높음

내열제, 항균제, 가소제, 불연제 등 의료용 첨가제가 고농도로 포함되어 있어 분해 시 환경 독성이 더 클 수 있습니다.

 

약물·체액 잔존

주사기, 수액백, 수술도구 포장 등에는 약물이나 체액이 미량 남아 있을 가능성이 있으며 이로 인해 미세플라스틱이 2차 오염물질의 운반체가 될 수 있습니다.

 

재활용 불가 구조

대부분이 복합재질(PET+PE 등)로 구성되어 있어 기술적으로 재활용이 거의 불가능하며 처리 부담이 더욱 큽니다. 결과적으로 의료 폐플라스틱은 일반 소비재 플라스틱보다 환경 유해성과 건강 유해성 측면에서 더 높은 위험군에 속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 문제는 단순 분류 기준이나 소각량 조절만으로 해결되기 어렵고 근본적인 생산·소비 방식의 변화가 병행되어야 합니다.

 

 

의료폐기물의 플라스틱 문제에 대한 국내외 대응 현황과 대체 기술은 어디까지 왔나?

 현재 의료폐기물에서 발생하는 플라스틱 문제에 대해 본격적인 제도적 대응을 하고 있는 국가는 많지 않지만 환경오염 및 지속가능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점차 대체 기술과 정책 실험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해외 동향

- 유럽연합(EU): 일부 의료기기에 대해 재사용 가능한 모델 또는 생분해성 소재 전환을 유도 중

- 일본: 병원 분리배출 기준을 강화하고 의료용 포장재의 소재 개선을 정책적으로 추진

- WHO(세계보건기구): 2022년 “지속 가능한 의료폐기물 관리 권고안” 발표, 생분해성 의료소재, 폐기물 최소화 전략, 친환경 조달 제안

 

국내 시도

- 생분해성 소재로 제작된 코로나 진단 키트 및 방호복 시제품 일부 개발

- 1회용 사용 후 폐기되던 일부 도구를 다회 멸균 재사용으로 전환하려는 민간병원의 시도

- 일부 의료기관의 재활용품 분리 회수 시범사업

 

 그러나 아직까지 법적 강제력이나 인센티브 부족, 높은 단가, 안전성 입증 한계로 인해 대규모 확산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제는 의료 폐플라스틱을 단순 ‘감염성 폐기물’이 아닌 환경 유해 물질로 인식하는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합니다.

 

 

 

 의료폐기물과 미세플라스틱, 두 키워드는 지금까지는 별개의 문제로 다뤄졌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제 인식해야 합니다. 병원의 쓰레기통에서 버려진 플라스틱 하나가 분해되지 않은 채 토양과 물속, 공기 중으로 스며들어 다시 우리의 몸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사실을.

 

 의료는 생명을 다루는 고귀한 영역이지만 그 부산물에 대한 고민이 결여된다면 우리는 또 다른 방식으로 생명을 위협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소각으로, 매립으로, 혹은 누출로 퍼지는 보이지 않는 미세 오염물은 그 어느 때보다 조용하게 그러나 강력하게 환경과 인체를 침범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의료폐기물을 감염 위험 차원에서만 관리하고 있지만 이제는 지속가능성과 환경 위험성까지 포괄하는 새로운 접근이 필요합니다. 그 시작은 작은 인식의 전환입니다. 버려진 의료 플라스틱이 더 이상 ‘버려진 채’ 남지 않도록 우리는 기술, 제도, 인식에서 변화를 시작해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