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폐기물

의료폐기물 분해 기술, 원자력 활용은 현실 가능한가?

dolcesommar 2025. 7. 22. 22:26

 

 전 세계가 감염병 시대를 겪으며 의료 시스템은 극한의 압박을 받았습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의료폐기물 처리 문제입니다. 진료, 수술, 검사, 백신 접종 등 의료 행위의 모든 과정에서 발생하는 의료폐기물은 감염성이라는 특수성을 가지고 있어 일반 쓰레기와는 구분됩니다. 이 때문에 전용 봉투, 전용 운반차량, 전문 소각시설까지 필요하지만 이러한 처리 체계에는 분명한 한계가 존재합니다. 기존에는 고온 소각이 감염성 의료폐기물 처리의 표준 방식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방식은 탄소 배출량이 높고, 유해가스 발생, 시설 확충 한계 등 여러 환경적·기술적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특히 팬데믹 이후 의료폐기물 발생량이 폭증하면서 소각만으로는 감당이 어려운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배경에서 제기되고 있는 대안 중 하나가 바로 ‘원자력 기술의 활용’입니다. 기존에는 방사선을 멸균이나 암 치료, 식품 보존 등에 사용해왔지만 최근 들어 일부 연구진들은 의료폐기물 분해에 방사선 기술을 적용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그럼 이 접근은 실현 가능한 대안일까요? 아니면 기술적 환상에 불과한 걸까요?

 

의료폐기물 처리와 원자력 기술의 접목 가능성

 

현재의 의료폐기물 처리 방식과 그 한계

 현재 우리나라를 포함한 대부분의 국가는 의료폐기물을 감염성 여부에 따라 분리하고 소각 또는 고압증기 멸균(멸균기 방식) 등의 방법으로 처리합니다. 구체적으로는 다음과 같습니다:

 

- 소각 방식: 약 850~1,100℃ 이상의 고온에서 의료폐기물을 완전히 연소시켜 병원균을 제거합니다. 장점은 완전 멸균과 부피 감소, 단점은 다이옥신, 질소산화물, 탄소 배출 등의 환경 유해 물질이 발생한다는 점입니다.

- 고압증기 멸균(Autoclave): 의료폐기물을 121℃ 이상 고압 환경에서 30분 이상 가열하여 병원균을 제거하는 방식입니다. 장점은 저비용·비연소 방식이라는 점, 단점은 멸균 후 의료폐기물이 다시 소각되어야 하는 2중 처리 부담이 존재합니다.

- 화학 처리: 특정 약품을 이용해 멸균하는 방식으로 감염성이 낮은 의료폐기물에 사용되나 2차 화학 오염 우려가 큽니다.

 

 이 외에도 플라스마, 마이크로웨이브 방식 등이 일부 시험되고 있지만 시설 확장성, 운용 비용, 안정성 측면에서 상용화가 어려운 상황입니다. 특히 감염성 의료폐기물의 안전성 기준을 만족하는 동시에 탄소 배출과 환경오염을 줄일 수 있는 기술에 대한 수요는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의료폐기물 처리에 접목될 수 있는 원자력 기술 원리

 일반적으로 원자력이라고 하면 원자력 발전소를 떠올리지만 그 범주는 매우 넓습니다. 의료 현장에서는 방사선을 이용한 암 치료, 멸균, 영상 진단 등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산업계에서도 식품 방사선 조사, 재료 분석, 고분자 처리 등 방사선을 활용하는 사례는 많습니다. 원자력 기술 중 의료폐기물 처리에 적용 가능한 방식은 크게 세 가지로 분류됩니다.

 

감마선 조사(Gamma Irradiation)

- 코발트-60(Cobalt-60) 등을 이용한 고에너지 방사선을 폐기물에 조사하여 미생물 DNA를 파괴하고 병원균을 멸균합니다.

- 이미 식품 멸균과 의료 기구 멸균에 널리 쓰이고 있음.

 

전자선 조사(Electron Beam, E-beam)

- 전자가속기를 통해 고속 전자빔을 조사, 의료폐기물 표면과 내부를 살균·분해합니다.

- 감마선보다 조사 시간이 짧고 방사성 동위원소를 사용하지 않아 의료폐기물 관리 부담이 적음.

 

플라스마-방사선 융합 기술

- 플라스마 열처리에 방사선 조사를 병행하여 유기성 폐기물을 빠르게 분해하는 방식으로 차세대 기술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이러한 기술은 의료폐기물의 멸균은 물론 분자 구조 자체를 붕괴시켜 소각 없이 부피 감소와 무해화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습니다.

 

의료폐기물에 원자력 기술이 실제로 쓰일 수 있을까?

이론상으로는 매우 매력적인 기술이지만 실질적으로 적용하려면 다음과 같은 조건을 충족해야 합니다:

 

감염성 폐기물의 종류별 분해 적합성 확보

- 방사선은 주사기, 거즈, 체액, 조직 등 다양한 재질에 작용해야 하며 일부 플라스틱이나 금속성 물질은 방사선 흡수가 불균형할 수 있습니다.

 

방사선 조사 후 의료폐기물의 2차 오염 방지 체계 필요

- 멸균 후에도 물리적 형태가 유지되므로 의료폐기물의 물성 변화나 내구성 변화 여부를 파악해야 합니다.

 

작업자와 주변 환경의 방사선 안전 관리

- 감마선 시설은 일반 병원 부지 내 설치가 어려우며 기존 방사선 시설과 연계해도 허가와 주민 수용성 문제가 발생합니다.

 

고비용 장비 및 정기적 유지 보수 부담

- 전자가속기와 감마선 조사기는 고가 장비로 초기 설치 및 유지 비용이 고온 소각로보다 높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아직까지는 실험실 수준의 파일럿 테스트나 일부 연구 시설에서만 시도되고 있으며 대형 병원이나 국가 단위에서 도입한 사례는 찾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일본, 프랑스 등 방사선 기술 강국에서는 의료폐기물 처리에 이 기술을 접목하기 위한 검증 프로젝트가 진행 중입니다.

 

의료폐기물 처리와 원자력 기술 접목의 한계점

 가장 큰 문제는 사회적 수용성과 인허가 체계입니다. 원자력이나 방사선이라는 단어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위험’이나 ‘방사능 노출’이라는 부정적 이미지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실제로 이러한 인식은 의료폐기물 처리 기술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이는 기술 도입 초기 단계에서 가장 큰 저항 요인으로 작용합니다. 예를 들어 의료기관이나 지방자치단체에서 감마선 조사 시설을 도입하거나 전자가속기를 설치하려는 시도가 있을 경우 인근 지역 주민들의 방사선 노출에 대한 우려와 반발이 예상됩니다. 이는 비단 과학적 검증 여부와 무관하게 정서적 반응으로 발생하는 것이기 때문에 기술 개발과 함께 소통 전략과 대국민 교육이 병행되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또한 해당 기술을 운용하기 위한 전문 인력의 확보와 유지관리 체계도 중요한 과제입니다. 방사선 장비를 운용하려면 관련 자격증을 가진 방사선사 또는 원자력 안전관리자가 필수적으로 배치되어야 하고 이들은 정기적인 교육과 실무 경험을 가져야 합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대부분의 병원이나 의료폐기물 처리 시설에서는 이러한 인적 자원을 따로 확보하고 있지 않아 기술 도입에 따른 인력 비용과 훈련 부담이 또 다른 장벽이 될 수 있습니다.

 

 더불어 현행 「의료폐기물 관리법」과 「생활방사선안전 관리법」은 이처럼 융합형 기술에 대한 법적 정의와 운용 기준이 미비하여 제도적 뒷받침 없이 새로운 기술을 현장에 적용하는 데 법적 불확실성이 존재합니다. 이로 인해 일부 민간 업체나 연구기관에서는 “기술은 있지만 쓸 수 없다”라는 이른바 규제 샌드박스 문제를 호소하고 있습니다.

 

 요약하자면 의료폐기물 처리에 원자력 기술을 접목하려면 기술적 완성도뿐만 아니라 사회적 인식, 정책적 정비, 인적 자원 확충이라는 복합적인 해결 요소가 필요합니다. 이러한 장벽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유망한 기술이라도 실제 적용은 어려울 것입니다.

 

국내외 연구 현황과 제도화 가능성

 

 국내에서도 의료폐기물 처리의 대안 기술로 원자력 활용에 대한 관심이 점차 높아지고 있습니다. 한국원자력의학원, 한국원자력연구원 등 주요 연구기관은 최근 전자선(E-beam) 기술을 활용한 의료폐기물 멸균 및 저감 기술에 대해 실증 연구를 진행하고 있으며 일부 기술은 의료 기구 멸균 분야에서는 이미 상용화되어 의료 산업에서 실질적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주목할 만한 사례는 E-beam을 활용한 의료폐기물 통합 멸균 시스템 개발 프로젝트입니다. 이 기술은 의료폐기물을 직접 연소하지 않고도 감염성 병원체를 완전히 제거할 수 있어 소각로의 설치가 어려운 도심 병원에서도 적용이 가능합니다. 게다가 방사성 동위원소가 아닌 전기 기반 가속기를 활용함으로써 방사성 폐기물이 남지 않는다는 점에서 안전성이 비교적 높은 편입니다.

 

 해외 사례로는 일본이 대표적입니다. 일본 후쿠오카현 소재의 한 대학병원에서는 의료폐기물의 감염성을 분석한 후에 고위험 폐기물에 감마선을 조사해 고온 소각 없이 멸균과 구조 파괴를 동시에 달성하는 실증 실험을 수행한 바 있습니다. 프랑스의 경우 민간 방사선 기술 기업과 의료폐기물 처리 기업이 협업하여 플라스마+전자선 융합 시스템을 연구 중이며 유럽연합 차원에서도 탄소중립형 폐기물 처리 기술을 적극 장려하고 있어 정책적 후속 조치 가능성이 높은 상황입니다.

 

 한편 국내에서는 ESG 경영의 확산과 함께 병원 등 의료기관의 탄소 배출 저감 요구가 현실화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일부 대형병원은 이미 소각 대신 저탄소 멸균 기술로의 전환을 검토 중이며 환경부 및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2026년까지 원자력 기반 의료폐기물 감축 기술을 산업 현장에 적용할 수 있도록 기술 로드맵 수립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제도화 측면에서는 아직까지 명확한 법적 프레임은 부재하지만 규제특례 적용이나 규제 샌드박스 도입을 통해 시범사업 형태로 운영할 수 있는 여지는 충분합니다. 특히 고탄소 산업의 구조 개편이 중요한 정책 과제로 떠오른 만큼 의료폐기물 분야에서도 선도적인 기술을 가진 병원이나 업체가 제도 실험의 주체가 될 가능성이 큽니다. 결과적으로 국내외의 기술적 흐름과 환경 규제 변화는 원자력 기술 기반 의료폐기물 처리 방식의 제도화 가능성을 현실적인 범주 안으로 끌어오고 있는 중이며 앞으로의 정책적 판단이 그 실현 속도를 결정짓게 될 것입니다.

 

 

 의료폐기물은 점점 더 많이, 빠르게, 다양하게 쏟아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기존 소각 위주의 처리 방식은 탄소중립 시대에 지속 가능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의료폐기물 처리에 원자력 기술을 접목하는 시도는 단순한 공상이나 위험한 상상이 아니라 매우 현실적인 대안 기술로서의 가능성을 갖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물론 장벽은 높습니다. 기술적 안정성 검증, 제도적 허용성, 사회적 인식 개선이 모두 요구됩니다. 하지만 방사선은 이미 우리의 식품, 약품, 의료 기구 곳곳에서 조용히 신뢰받으며 사용되고 있는 기술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이 기술을 공포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정보에 기반한 판단과 검증된 제도를 통해 ‘신뢰 속에 활용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입니다. 결국 미래의 병원은 의료폐기물을 태워 없애는 곳이 아니라 지속 가능하게 분해하고 순환시키는 기술 기반 센터로 발전해야 할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원자력 기술은 의외로 가장 조용하고 강력한 조력자가 될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