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폐기물

의료폐기물도 블록체인으로 추적 가능할까?

dolcesommar 2025. 7. 15. 02:32

 

 병원에서 환자에게 진료가 이뤄지고, 처방이 내려지고, 수술이 시행되는 동안 수많은 소모품과 의료기기가 사용되고 이러한 것들은 결국 의료폐기물로 전환됩니다. 특히 의료폐기물은 감염성과 위험성을 동반하기 때문에 단순한 쓰레기가 아니라 '관리 대상 위험물'로 분류됩니다.
이러한 의료폐기물은 병원 내에서 시작해 운반, 중간처리, 최종 소각까지 여러 단계에 걸쳐 정밀한 추적과 안전한 처리가 요구됩니다.

 

 하지만 이 의료폐기물의 이동 경로는 아직도 완전히 투명하게 드러나지 않습니다. RFID 기반의 실시간 전산 등록 시스템이 도입된 지도 수년이 지났지만 현장에서는 일부 미등록 배출, 허위 입력, 위탁업체 간 이관 과정의 누락 등 여전히 추적의 공백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또한 병원 규모나 지역에 따라 적용 편차도 크고, 소형 병원이나 의원에서는 RFID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거나 업체와의 수기 계약에 의존하는 방식이 유지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이 복잡한 흐름 속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핵심은 무엇일까요? 바로 ‘신뢰 가능한 기록’입니다. 모든 단계에서 발생한 사실을 누구도 바꿀 수 없게 기록하고, 누구나 검증할 수 있도록 공개된 시스템이 갖춰진다면  위험 물질로서의 의료폐기물은 훨씬 안전하게 관리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때 우리가 주목할 수 있는 기술이 바로 ‘블록체인’입니다. ‘블록체인’은 암호화폐나 금융에만 쓰이는 기술이 아닙니다. 공공 기록, 계약서, 인증서, 공급망 관리 등 데이터의 신뢰와 추적성이 중요한 모든 분야에 확장 적용되고 있는 구조입니다. 그렇다면 의료폐기물에도 블록체인을 적용해 생성부터 소각까지의 흐름을 안전하게 기록한다면 기존 시스템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을까요?

 

 이 글에서는 의료폐기물의 현재 추적 방식과 그 구조적 문제를 진단하고, 블록체인 기술이 왜 필요한지,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짚어보며 실현 가능성과 미래 과제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의료폐기물 추적 가능성

 

의료폐기물의 현재 추적 시스템 – RFID로는 부족한 이유

 현재 국내 의료폐기물은 RFID 기반의 전자관리 시스템을 중심으로 추적됩니다. 이 시스템은 폐기물 배출자가 포장된 폐기물 봉투에 부착한 태그를 통해 배출 일자, 수거업체, 중간처리장, 최종 소각장까지의 이동경로를 전산으로 기록하고 실시간으로 감시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습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이 시스템만으로는 완전한 투명성과 정확성을 보장하지 못합니다.

 

주요 한계는 다음과 같습니다:

 

- 중간 단계에서의 데이터 조작 가능성 (예: 수거 시간 미기록, 무단 이관 후 뒤늦은 입력 등)

- 인력 부족, 기기 부재, 교육 부족 등으로 실시간 입력이 안 되는 소형 의료기관

- 위탁업체 간 이관 시 이중 입력·오류 발생

- RFID 태그 분실·오염 등으로 인한 추적 불능 사례 존재

- 중간처리 이후 소각장까지의 이력 누락

 

 이러한 문제로 인해 실제로 의료폐기물이 지정된 처리 경로를 벗어나거나 법적 기준을 위반한 처리 사례가 꾸준히 적발되고 있습니다. 즉, 단일 기관의 서버에 의존한 데이터 저장 방식은 투명성과 신뢰성, 위·변조 방지 측면에서 아직 한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블록체인 기술의 가능성이 제기됩니다. 데이터의 위조가 불가능하고, 중앙 서버 없이도 다수의 주체가 동시에 검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블록체인의 원리 – 왜 의료폐기물 관리에 적합할까?

블록체인은 데이터를 분산된 네트워크에 기록하여 위·변조를 원천 차단하는 기술입니다. 모든 기록은 시간 순서대로 연결된 ‘블록’에 저장되며 하나의 블록에 입력된 정보는 전체 네트워크 참여자에게 동시에 공유됩니다. 의료폐기물의 처리 흐름을 예로 들면 하나의 의료폐기물 봉투가 병원에서 포장되는 순간 블록체인 시스템에 다음 정보가 저장될 수 있습니다: 배출자 병원 정보 및 등록번호, 의료폐기물 종류 및 중량, 수거 일시, 수거 차량 번호, 운반 중 GPS 위치, 중간처리장 등록 정보, 최종 소각 일시, 온도, 잔재 처리 결과

 

 이 모든 정보가 순차적으로 블록에 기록되며 기록 후에는 어떤 참여자도 변경할 수 없게 됩니다. 또한 참여 주체(병원, 수거업체, 소각장 등)는 공인된 키(인증)로만 접근 가능하므로 접근 기록 자체도 추적이 가능합니다. 이는 단순한 전산 기록보다 훨씬 강력한 “책임의 추적성(traceability of responsibility)”을 제공합니다. 또한 블록체인은 ‘스마트 컨트랙트’라는 자동화 기능도 지원합니다. 예를 들어 소각이 확인되지 않은 의료폐기물은 일정 시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경고가 발송되고, 관련 기관에 보고되는 시스템도 구축 가능합니다. 이처럼 데이터 투명성, 자동화된 감시, 추적 기반 규제 실행력 측면에서 블록체인은 의료폐기물 관리를 새로운 단계로 끌어올릴 수 있는 기술적 토대를 제공합니다.

 

의료폐기물 관리 분야의 블록체인 실제 적용 가능성

 블록체인을 의료폐기물 관리에 실제로 도입하려는 시도는 아직 초기 단계입니다. 그러나 유사 분야에서는 이미 일부 국가에서 실험적 적용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해외 사례

- 에스토니아: 의료기관의 약물 폐기 기록과 처방 폐기물 이력 관리를 블록체인 기반 의료 데이터 시스템에 통합해 약물 남용 및 이중 투약 방지 목적으로 활용 중

- 인도 마하라슈트라 주: 의료폐기물 운반 차량의 이동 경로와 처리 일지를 블록체인으로 기록해 지방 정부의 감독 업무 자동화 시범 운영 중

- EU 일부 병원 체계: 병원 ESG 경영 보고서 작성 시 의료폐기물 처리 이력 데이터를 블록체인에 연결하여 외부 감사를 투명하게 처리하는 시스템 도입 실험

 

국내 동향

 한국의 경우 블록체인을 직접 의료폐기물 관리에 도입한 사례는 아직 없습니다. 그러나 정부는 공공데이터 기반의 투명한 자원 순환 시스템 마련을 위해 ‘폐기물 전자정보 통합 플랫폼’을 추진 중이며 2026년까지 RFID 기반에서 AI · IoT, 분산 저장 기술로 확장하겠다는 로드맵을 발표한 바 있습니다. 이에 따라 일부 민간 의료폐기물 처리 업체에서는 시범적으로 블록체인 기반 이력 관리 시스템 도입을 검토 중이며 대형 병원이나 대학병원에서는 의료 자산 관리, 의료폐기물 추적 통합 플랫폼 개발을 위해 컨설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즉, 아직은 실현 단계에 이르진 않았지만 기술 기반은 충분하며 제도적 장치와 의지가 수반된다면 가까운 미래에 적용 가능한 구조임이 분명합니다.

 

블록체인의 의료폐기물 분야 도입 시 기대 효과와 주요 과제 

 의료폐기물에 블록체인을 적용할 경우 단순한 추적을 넘어서 의료 안전, 환경 규제, 병원 신뢰도까지 동시에 개선할 수 있는 파급력을 갖게 됩니다. 

 

기대 효과 요약

위변조 차단: 고의 누락, 불법 이관 근절

투명성 확보: 병원별 폐기물 배출 데이터 정밀 공개 가능

정책 신뢰성 강화: 의료폐기물 규제 이행률 제고

환경 감시 효과: 누락된 소각, 비정상 처리 자동 감지

ESG 연계 보고서 자동화: 병원 평가 체계와 연동 가능

 

현실적인 과제들

법령 정비 필요: 현재는 RFID 사용이 법적 기준으로 지정되어 있어 블록체인을 병행하거나 대체하려면 법 개정이 필요함

비용 부담 문제: 시스템 구축 및 참여 병원의 인프라 준비 비용이 상당함

소규모 의료기관의 접근성: 동물 병원, 의원급 의료기관은 기술 이해도와 시스템 도입 여력이 부족

데이터 프라이버시 이슈: 의료 정보와 폐기 정보가 연결될 경우 개인정보 보호 이슈가 발생할 수 있음

공공·민간 간 역할 분담 불확실성: 데이터를 누가 소유하고, 검증하고, 관리할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함

 

이러한 과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점진적 도입, 시범사업, 이해관계자 간 공론화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의료폐기물을 단순한 처리 대상이 아니라 의료 시스템의 신뢰와 투명성을 가늠하는 지표로 바라보아야 할 시점에 도달했습니다. 그동안 수많은 제도 개선과 기술 도입이 있었지만 의료폐기물 추적과 관리의 공백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특히 중소형 병원, 지역 위탁업체, 중간처리 업체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얽혀 있는 구조에서는 단일 시스템이나 행정 명령만으로는 실질적인 개선이 어렵습니다.

 

 바로 이러한 복잡성과 다중 참여 구조 때문에 블록체인의 ‘공공 장부’ 성격이 의료폐기물 추적에 적합하다는 평가가 나오는 것입니다. 모든 이력이 시간순으로 기록되고, 위·변조가 불가능하며 참여 주체가 모두 확인 가능한 투명한 체계는 의료폐기물의 불법 처리 방지, 환경 감시 강화, 제도 신뢰 회복에 모두 기여할 수 있습니다.

 

 물론 모든 기술이 만능은 아닙니다. 블록체인 기술도 그 자체로 완성된 답은 아닙니다. 현장 인프라, 법 제도, 예산 구조, 사용자 교육 등 다양한 요소가 맞물려야 비로소 의미 있는 시스템이 작동합니다. 특히 의료 정보와 환경 정보가 만나는 경계 지점에서는 프라이버시 보호와 공공 기록의 균형을 조율하는 윤리적 기준도 함께 정립되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블록체인 기술은 단순히 의료폐기물 처리의 편의를 위한 기술이 아니라  의료기관의 사회적 책임을 가시화하고 시민과 사회가 감시하고 참여할 수 있는 통로를 제공하는 기술입니다. 앞으로 의료폐기물 관리가 더 이상 ‘병원 뒤편의 일’이 아니라 모든 국민이 함께 확인하고 감시할 수 있는 공공 시스템으로 전환되기 위해서는 기술 기반의 투명성 확보가 핵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